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오세훈 시장 2주년, 시민사회 릴레이 기고] ⑤서울은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도시인가?
작성자 : 행복이 등록일 : 24-08-20 16:09 조회수 : 50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2016년 구의역 참사를 기억할 것이다. 19세 청년 노동자 김군이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역사에 진입한 열차에 치여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고가 발생한 곳이 다름 아닌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관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민들은 위험의 외주화가 야기한 처참한 결과에 분노했으며, 그 분노는 서울시의 반성과 변화를 요구하는 여론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은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서울시의 책임과 역할을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서울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산업안전팀 신설, 노동안전조사관 신설, 서울특별시 산업재해 예방 및 노동안전보건 지원 조례 제정 등은 그 노력의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김군과 함께 일했던 하청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은 서울시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의미 있는 정책 사례였다.
구의역 참사로부터 8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면, 지금 서울은 과연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도시로 나아가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2024년 서울시의 노동안전보건정책은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거꾸로 향하고 있다.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보다 우선시하는 정책 방향이 서울시 공공부문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서울시는 비용 절감을 위해 2026년까지 서울교통공사 직원 2212명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서울의 지하철 교통 수요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인력 감축은 필연적으로 위험의 외주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의 계획대로 인력 감축이 계속 추진된다면, 구의역 참사와 같은 사건은 계속 발생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우려했던 일들이 최근에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6월에 연신내역 전기실에서 작업하던 서울교통공사 노동자가, 7월에는 삼각지역에서 조명등을 설치하던 서울교통공사 용역업체 노동자가 감전으로 사망했다. 사고 당시의 정황들을 살펴보면, 이 사고들이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인력 감축과 무관하지 않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책의 퇴행은 비단 공공부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민간부문에서 일하는 서울시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에서도 퇴행의 흐름이 명확하게 확인되고 있다.
일하는 서울시민들의 노동안전보건 업무를 전담하던 산업안전팀은 더이상 서울시청 조직도에서 찾아볼 수 없다. 2024년 서울시 노동정책과의 안전보건 작업환경 조성 사업 예산은 5500만원에 불과하다. 서울시의 예산이라고는 믿기 힘든 수치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수치가 2023년 5900만원에 비해 감소한 것이라는 점이다.
서울시는 수많은 시민이 매일 출퇴근하고 일하는 공간이다. 서울시가 앞장선다면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낼 수 있다. 특히 서울교통공사와 같이 서울시가 사실상 사용자라고 볼 수 있는 공공부문에서는 서울시의 정책이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후보 시기였던 구의역 참사 6주기에 안타까운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재해 없는 안전 도시 서울 만들겠습니다. 오세훈이라는 메모를 직접 써서 구의역에 남긴 바 있다. 오 시장에게 지면을 빌려 간곡히 부탁한다. 이 약속을 제발 지켜달라고.
18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의 즉석밥 및 쌀 가공식품 판매대 앞에서 한 시민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해 1∼7월 쌀 가공식품 수출액은 1억6612만달러(약 2256억원)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 증가하며 동 기간 기준 최대치를 경신했다.
탄창에 총알 8발을 한 발 한 발 장전할 때마다 떠오른다. 어머니의 얼굴, 눈물짓는 아내, 어린 자식의 미소 그리고 해방된 조국의 모습…. 총알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에게 4발, 경호원들에게 3발이 명중됐다. 총을 발사한 자는 대한독립 만세!를 러시아어로 외치고 체포됐다. 마지막 남은 한 발을 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일본 수사관에게 나는 목적한 사람을 쏘았으니 그 후엔 발사할 필요가 없어서 멈췄다고 대답했다. 그는 안중근이다.
독립운동의 여러 방식 중에서 일제의 상징적 인물에게 폭탄을 던지거나 총을 쏜 의사(義士)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안중근 등이 있다. 이들은 거사 후 고문, 사형이라는 끔찍한 고난에 기꺼이 동의했다.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유해는 해방이 되고나서야 해외에서 봉환되어 1946년 효창공원에 묻혔다. 3인이 안장된 묘소가 ‘삼의사(三義士) 묘’다. 그런데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삼의사 묘소엔 묘가 3개가 아닌 4개 있다. 2024년 사진의 맨 왼쪽 묘가 안중근의 가묘다. 그의 유해를 찾지 못해 비워놓은 가짜 묘다. 그래서 사의사(四義士) 묘가 아니라 삼의사 묘라 불렀다. 안중근의 시신은 사라졌다. 일제는 사형 집행 후 죽은 안중근이 항일운동의 기폭제가 되는 것을 두려워해 유가족에게 돌려주지 않고 암매장해 버렸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 살해 증거인 권총이 분실됐다고 발표했다. 제국주의 일본의 심장을 관통한 권총도 사라졌다.
1971년 흑백사진 속의 삼의사 묘소는 황폐화돼 잔디가 심하게 훼손되어 맨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일본명 다카기 마사오였던 일본군 중위 출신 박정희는 삼의사 묘소가 있는 효창공원에 반공투사 위령탑을 노골적으로 세웠다. 이곳이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는 것을 꺼린, 박정희의 불편한 심기가 드러난 게 아닐까 생각한다. 후손들이 안중근의 유해와 권총을 찾고 있지만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할 것은 ‘이 땅의 정의’다. 독립군을 토벌했던 일본군 출신 친일파 76명이 현충원에 누워 있다. 친일파 무덤은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삼의사 묘는 용산구청이 동네공원(근린공원)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식민지배가 정당하다’는 자가 독립기념관 관장 자리에 앉았다. 해방 후 척결되지 않은 친일파들이 반공 친미주의자로 변신, 대대손손 권력을 누리면서 ‘이 땅의 정의’는 사라졌다.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말만큼 숨이 턱 막히는 열대야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 쾌거에 조선인들은 숨통이 트였다. 그의 총엔 아직 발사 안 된 총알 한 발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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